바둑두는 여자

장혜민
2021-07-21
조회수 449

사연 제목: 바둑두는 여자


사연 내용: 


익명 요청드립니다.

선정된다면, 반드시 30대 초반의 귀여운 목소리로 읽어주세요.


안녕하세요?

타이젬 7단두는 워킹맘입니다.

연구생 출신은 아니고, 도장생활 잠시 하다가 그만두고 지금은 취미로만 즐기고 있어요.

요즘도 한달에 최소 스무판은 두고 있네요. 환갑 전에 9단 찍고싶거든요.

아무래도 여성유저가 많지 않은 분야다 보니, 바둑두는 여자에 관한 사연을 풀어볼게요.

아, 세상 모든 바둑두는 여자가 저 같지는 않을겁니다. 재미로 읽어주세요.


다들 딸, 며느리, 아내 혹은 엄마가 바둑을 둔다하면 부럽다 하시던데요.


1. 여섯살때부터 아빠의 권유로 바둑을 시작했어요. 

자연스럽게 8급 두시는 아빠랑도 자주 대국을 하게되었는데, 점점 아빠 기력을 넘어서서, 열살쯤 제가 아빠께 아홉점 접어드렸어요. 

아홉점 접바둑에 바둑판 전체를 두어번 잡히신 아빠는, 바둑을 평생 접으셨습니다. 


2. 시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러간 첫날, 남편의 주선으로 시아버님과 바둑을 뒀어요. 

시아버님도 8급 정도 되신다 했는데, 정선으로 두게되었고.. 너무 긴장한 탓에 시어머님이 깎아주시던 과일과 함께 시아버님 대마를 모두 잡아먹어버렸어요. 

그렇게 시아버님도 바둑을 접으셨습니다. 벌써 7년전 이야기네요.


3. 남편과는 바둑동호회에서 만났습니다. 

남편은 당시 1급정도였나봐요. 

3개월만 주면 저를 정선에 이길 수 있겠다고 장담하더라구요. 

그게 너무 귀여워서 몇 번 두다 그렇게, 바둑은 안잡히고 인생을 잡혀서 결혼까지 갔네요. 

여전히 정선은 커녕 다섯점정도의 기력차이인데, 남편이 이걸 들으면 삐질겁니다. 

네점에는 이길수 있을거라고 하던데.... 반드시 익명으로 읽어주셔야해요. 

안그래도 자꾸 자기 돌 공격온다고 바가지 긁어요.

다행히, 남편은 바둑을 아예 접지는 않았습니다. 작년부터 1년에 한두판정도는 두는것같아요. 

아내가 바둑을 둬서, 배우기 좋겠다 하시는 분들 있는데요. 

운전과 바둑은 학원에서 배우세요. 


4. 요즘은 네살 꼬맹이를 어떻게 바둑에 입문 시키나 고민하고 있습니다. 

소소하게 취미로 엄마인 저보단 조금 더 잘둬서 '두점 접어드릴게요' 하는 정도였으면 좋겠는데, 타이젬 9단 정도 뒀으면 하는건 큰 바램이겠죠? 

10년 안에, 세가족 도합 20단, 30년 안에, 미래 며느리까지 도합 30단 쯤 되서 같이 혼성으로 팀전 나가봤음 좋겠어요. 

혹시 이 글을 보고 있거나 듣고 계신 분 중 사랑으로 가르쳐주실수 있는 분이 있다면 반드시 연락바랍니다. 저는 못가르쳐요. 절 많이 닮았거든요.

 

 추가로, 남편이 부르는 제 별명은 '바둑멍청이'입니다. 

바둑 두는 만큼, 다른 것도 잘할 줄 알았다네요. 

네, 아닙니다. 바둑만 잘둬요. 

바둑과 부부생활은 별개입니다. 

기력만 보고 결혼하시면 제 남편처럼 되실 수도 있어요. 

아, 물론, 저만 그럴수도 있겠지만... 응답하라 시리즈의 최택 케릭터가 괜히 나온 것 같지는 않아요....... 


 이거 너무 환상을 깨는 사연같은데, 뒤늦게 덧붙이자면, 뭐 장점도 없지는 않아요. 

내 딸/며느리/아내 혹은 엄마가 타이젬 7단 둔다고 자랑할 수도 있고... 

얄미운 사람 바둑 이겨달라고 할수도 있을거고..... 

대회 나갔다와서 상금을 쥐어준다거나........... 또.. 음.. 네, 뭐, 찾아보면 있겠죠............



제 사연은 여기까지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들 코로나 조심하시고, 건승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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