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한 수

신용재
2021-07-21
조회수 321

사연 제목: 신의 한 수를 찾아서


사연 내용:


바둑과 삶의 세계

 

바둑은 나의 친구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로부터 배운 바둑은 언젠가부터 나와는 불가분의 친구관계가 형성되어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시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언제든지 생각날 때는 항상 나와 함께 한다. 그래서인지 바둑급수가 유단자 수준에 이르렀다. 바둑계에는 바둑을 만판만 두면 1급 수준에 이른다는 속언이 있으니 어쩜 나는 만판을 넘게 두었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 같다. 어느 날 바둑대회장에서 직장 선배 한 사람이 말했다. “바둑을 두는 시간만큼은 늙지 않는다.” 나에게는 공감이 가는 말씀이었다. 자고로 바둑을 두는 신선은 도끼자루 썩는지 모른다고 했으니 말이다.


바둑을 두면서 바둑을 알고부터 나는 가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가를 생각해 보기도 한다. 일상의 어떤 기획력과 협상력 및 사고의 힘을 키우는데도 도움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살다가 슬럼프에 빠졌을 때 인생의 재미를 부여해주어 나를 일으켜 세워주기도 했다. 그러나 귀하고 귀한 삶의 시간들을 바둑에 많이 빼앗기느라 인생의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을 소홀이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바둑을 알면서 만들고 싶었던 바둑손익계산서는 아직도 미완성이다. 판단의 기준이 서로 상이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치의 대소를 판단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어쩌면 친구와의 관계에 있어 손익계산서를 따진다는 것은 영원한 우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 날 과거 직장 상사이자 선배였던 분과 겨루었던 바둑대회의 한 대국이 잊히지 않는다. 바둑은 만방에 가까운 불계로 내가 이겨있는 상황에서 승패와 관계없는 한집짜리 패가 걸렸다. 나는 거의 끝난 바둑이라 생각으로 무심코 패를 받았는데 이것이 자충수가 되어 대마의 사활을 가름하는 패가 되었고 이에 상대가 받아 줄 만한 패가 없어 결국 선배의 대마는 살고 오히려 나의 대마가 죽어 역전패를 당하게 되었다.

 

위기십결의 신물경속(慎勿輕速 : 바둑을 둘 때는 가볍게 막 두어서는 안 되고 신중하게 생각하고 돌을 놓아야 한다,)을 반하여 바둑을 두다가 역전패를 당한 것이다. 혹자는 이를 두고 꼼수를 두었다고 상대를 힐난할지 몰라도 당시의 나로서는 이를 부정적인 측면으로 보기보다는 나의 전체적인 국면을 읽지 못하고 정확하지 못한 판단 때문에 졌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서 선배에게 축하를 해주었다. (선배는 기회를 봐 내게 한 번 식사 대접을 하겠다는 제의를 했다.) 이를 기회로 앞으로 바둑을 둘 때 아무리 유리한 국면이라 할지라도 절대 가볍게 생각하지 않으리라 다짐을 했다. 그런데 알고 다짐한다고 삶이 그렇게 살아지는 것이 아닌 것처럼 반상에서도 같은 실수가 자고나면 또 반복되는 것이 너무나 삶과 비슷하여 비교가 될 뿐 아니라 더욱더 그 세계를 알고 싶어진다.

 

일본의 한 프로기사는 갑자기 바둑 두는 것을 중단했다고 한다. 바둑을 두는 순간 상대가 자꾸 실수를 하거나 잘못두기를 은근히 기대하는 생각이 들어 바둑 두는 사람으로서 자세가 바로 서지 않았다고 생각해서였다고 한다. 그러나 삶은 항상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공존하고 있으므로 부정적인 면보다는 긍정적인 면을 보고 살아야 할 것이다. 상대의 실수로 내가 한 번 쯤 이기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도리는 아니나 한 번 쯤 역경에서 승리를 맛보는 경험을 해 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삶은 누구에게나 이런 면이 내재되어 있다. 우리 시니어 세대도 끝까지 차분하게 반면을 주시하면서 삶을 살아야 하리라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인생역전도 가능하고 막판 뒤집기로 인생 대 역전의 드라마 연출도 가능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바둑을 두시는 분들에게 나만의 바둑대회 승리비법을 전수해 주고 싶다. ‘3확승’이라 요약하여 쉽게 기억하기 쉽게 제목을 붙였다. ‘3’은 한 판의 바둑을 두면서 적어도 3번 정도 계가를 하라는 것이고, ‘확’은 바둑돌을 놓을 때는 자신과 확신이 드는 곳에 두라는 말이며 ‘승’은 마지막으로 불리할 때는 승부수를 띠워 마무리를 지으라는 말이다.

바둑은 나에게 항상 긍정적인 자세로 후세의 사람들이 옳은 삶을 산 선배로서 존경받을 수 있는 그런 삶을 살도록 가르쳐 주고 있다. 오랫동안 갈고 닦은 삶의 지식을 후세에 전수하고 봉사하며 산다면 세상은 더 아름답고 재미있을 것이다. 나는 오늘도 인생의 축소판인 바둑을 두면서 삶의 깊이를 생각하며 배운다. 나도 이창호 9단처럼 삶속에서 신의 한 수를 찾아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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